작년 잡스가 이세상을 떠났을때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던걸로 기억합니다.
저의 경우 슬펏다기 보다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애플 제품의 디자인과 기능에 찬사를 보내지만.... 그 모든것들이 자신들의 손에 의해서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듯한 뉘앙스에는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이전 소프트웨어의 창의성에 대한 글을 작성할때도 말했지만...
잡스(Steve Jobs : 1955 ~ 2011)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창의적인 시대의 천재"로 칭송하지만, 저 개인의 시선으로 보자면 "융합을 잘할뿐이지 창의롭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창의성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 글은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세요.
링크 ☞ 2011/08/27 - [PC 전반적인 정보] - 소프트웨어~!!! 창의성이 전부인가?

이러한 저도 그 유명한 2005년 잡스의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은  일부러 찾아서 다 보았고...
나름 느끼는 것이 많았는데... 
그래서 언젠가 올려하지 하면서 나름 정리해둔 것들입니다. 


Stanford Report, June 14, 2005
스탠퍼드 리포트, 2005년 6월 14일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Jobs says
스티브 잡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아라”

This is the text of the Commencement address by Steve Jobs, CEO of Apple Computer and of Pixar Animation Studios, delivered on June 12, 2005.
아래는 애플컴퓨터사와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CEO인 스티브 잡스가 2005년 6월 12일에 있었던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한 연설의 내용입니다.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오늘 이렇게 세계 명문으로 꼽히는 스탠퍼드대의 졸업식 자리에 여러분과 함께 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습니다.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사실, 오늘처럼 대학 졸업식을 가까이서 보는 것도 처음입니다.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오늘 저는 제 인생에서 있었던 일 세 가지를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That's it. No big deal.
그게 전부이고 거창한 것은 없습니다.

Just three stories.
그냥 세 가지 이야기입니다.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첫 번째 이야기는 점들의 연결에 관한 것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저는 리드 대학에 입학한 지 6개월 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도 1년 6개월 동안 캠퍼스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청강생으로 지냈다가 결국 그것도 그만뒀습니다. 그렇다면 왜 저는 대학을 자퇴했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그 사연은 제가 태어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제 생모는 대학원을 다니던 젊은 미혼모였기 때문에, 저를 입양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생모는 대학을 나온 사람 집안에 저를 보내기로 굳건히 마음 먹었고, 제가 태어나면 변호사 가정에 입양시키는 것으로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그러나 제가 세상에 태어나자, 이 입양 부모는 마지막 순간 자신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여자 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그래서 대기자 명단에 있었던 지금의 양부모님이 한 밤 중에 전화 한 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뜻하지 않게 남자 아이가 태어났는데 입양하겠냐는 제안에 저희 양부모님은 흔쾌히 받아들이셨습니다.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그러나 생모는 양어머니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것과 양아버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고 최종 입양 서류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그러다가 생모는 몇 달 후, 저를 훗날 대학에 보내겠다는 양부모님의 약조에 겨우 마음이 풀리셨습니다.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그리고 17년 후 저는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그러나 순진했던 저는 스탠퍼드대에 맞먹을 정도로 학비가 비싼 대학을 선택하고 말았고, 노동자 계층이셨던 양부모님이 여태껏 모아온 저금을 학비로 고스란히 날리고 있었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대학에 들어와 6개월이 흘렀지만, 저는 대학 교육에서 별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제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몰랐고, 과연 대학이란 것이 제가 그것을 찾는 데 어떻게 도움을 줄지도 몰랐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그런데도 저는 양부모님이 일평생 모아온 돈을 모조리 써 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그래서 저는 자퇴를 하고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믿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당시에는 무척 두려웠지만, 돌이켜보면 자퇴는 제가 이제껏 한 것 중에 가장 잘 한 결정이었습니다.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학교를 그만두고 나니 흥미가 없는 필수 과목은 듣지 않아도 되었고 재미있어 보이는 수업을 청강할 수 있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그러나 온통 장미빛만은 아니었습니다.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우선 기숙사 방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 방을 찾아가 바닥에서 새우잠을 잤고 콜라병을 모아뒀다가 판 5센트로 음식을 사먹었으며 일요일 밤이 되면 시내를 가로질러 11킬로미터를 걸어가 하레 크리슈나 사원에서 제대로 된 식사 한 끼를 해결했습니다.

I loved it.
정말 맛있었습니다.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그리고 호기심과 직관을 따라가면서 우연히 겪게 된 경험들이 나중에 가서는 대부분 값을 매길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Let me give you one example:
그런 예를 하나 말씀 드리겠습니다.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당시 리드 대학은 아마도 미국에서 가장 우수한 서체 프로그램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캠퍼스 곳곳에 붙어있던 포스터는 물론 서랍에 붙어 있던 라벨이 모두 직접 손으로 꾸민 장식 서체로 되어 있었습니다.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자퇴를 해서 일반 정규 수업을 들을 수 없었던 저는 장식 서체를 쓰는 방법을 배우려고 서체 수업을 듣기로 결심했습니다.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세리프와 산세리프 서체에 대해서도 배웠고 각기 다른 글자 조합 사이에 간격을 달리하는 것에 대해서도 배웠으며 멋진 활자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활자는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과학으로 포착할 수 없는 예술적 섬세함을 지니고 있었고, 그 점에 저는 반했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그러나 살면서 이것을 실제로 쓸 날이 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그러나 10년 후 처음으로 매킨토시 컴퓨터를 설계하면서 이 모든 것이 되살아났습니다.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그리고 우리는 맥을 설계하면서 그때 배웠던 것들을 집어 넣었습니다.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맥은 아름다운 서체로 된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그때 당시 제가 대학에서 그 강좌를 청강하지 않았다면 맥은 지금처럼 다양한 서체를 갖추지도, 간격이 보기 좋게 균형을 이룬 글꼴을 갖추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그리고 윈도가 맥을 그대로 본땄으니까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PC 역시 다양한 글자들을 구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제가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도 않았을 테고 지금처럼 PC에 멋진 글자체가 생겼을리도 만무합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물론, 대학을 다닐 때에는 앞을 내다보면서 그 점들을 연결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봤을 때 그것은 너무나도, 너무나도 자명했습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거듭 말씀드리지만, 앞을 내다보고 점들을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뒤를 돌아보면서 연결할 수 있습니다.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니 여러분은 그 점들이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무언가를 굳게 믿어야 합니다. 이 무언가는 여러분의 배짱이 될 수도 운명이 될 수도 삶이 될 수도 숙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이러한 마음가짐은 저를 일으켜 세웠으며, 제 삶에 방점이 되었습니다.


내용이 긴 관계로... 나머지 내용은 내일 이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Posted by Rap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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